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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탈북한 황장엽, 北核 개발 경고했지만
진영 논리에 빠진 한국, 귀 막고 대북 지원해
기자회견 태영호의 경고… 이번에도 무시할 건가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로 김정은 체제를 위해 제1선에서 활약하던 태영호 공사가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것은 북한 내부에 큰 충격이다. 그는 한때 런던에서 지도자의 친형 정철을 직접 안내했고 그의 처는 백두 혈통의 핵심인 오백룡 가문의 일원이다.

하지만 태 공사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은 것은 그가 자청한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의로운 모습 때문이다. 70년간 공포 독재로 저항의 싹마저 모두 잘려나간 최악의 동토에서 저렇게 목숨 걸고 자기를 희생하는 상류층을 오랜만에 봤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계보를 잇는 두 번째 저항 정신을 느낀다. 물론 많은 탈북 인권 운동가가 있다. 하지만 실제로 김씨 정권을 가장 뼈아프게 흔드는 것은 그 치부를 잘 아는 사람들의 저항이다. 그래서 과거 김정일은 황장엽 비서를 살해하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태 공사가 탈북의 길을 택한 것은 북한 내부의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의 행동, 말 한마디는 이제 북한 고위층에게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태 공사와 황장엽 비서에겐 공통점이 많다. 그중 핵심은 대한민국의 국가 정통성을 인정하고 대한민국 힘으로 남북을 통일하겠다는 의지다. 북한은 자신들을 항일 세력으로 포장하면서 대한민국에는 친일파 틀을 씌워 왔다. 대한민국의 상당수 좌파 인사도 그런 북한에 동조했다. 하지만 두 엘리트는 국가 정통성이 '반일'이나 '친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와 '번영'에 있다고 생각했다. 한반도 5000년 역사 이래 개인의 인권을 완전하게 보장한 전례가 없었다. 지금처럼 번영해본 적도 없었다. 자유와 경제적 번영이야말로 '수령 독재'의 처절함을 경험한 북한 엘리트들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한 진리가 될 수 있다. 거짓말로 만들어낸 항일 우상화와 그것을 명분 삼은 3대 폭압 체제는 인민에게 한없는 고통을 주었다. 이제 김정은 정권은 선대(先代)가 이루지 못한 '살인'의 기록마저 갈아치우고 있다.

2016년 12월30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서울 조선일보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서울에 온 소회를 말하고 있다. /이태경 기자

황장엽 비서와 태영호 공사의 망명 시점도 비슷하다. 두 사람 다 북한 정권이 최악 위기에 처했을 때 망명했다. 황 전 비서가 망명한 1997년은 북한에서 수백만 명이 아사(餓死)하며 체제 붕괴 초읽기에 들어가던 시기였다. 황 전 비서는 북한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에 끼칠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통일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려 했다고 망명 동기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이미 "김정일의 핵은 흥정 대상이 아니며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들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6자회담은 미 국무부 관리들 월급 주려고 필요한 것인가" 하며 허탈해하기도 했다. 그는 남북한이 짜고 벌이는 햇볕 놀음을 온몸으로 막고 나섰다. 저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발간하며 저항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황 전 비서가 이미 했던 말을 태 전 공사가 또다시 강조하고 있다. 그는 "김정은 정권은 10조달러를 준다 해도 핵무기를 없애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한·미 양국의 리더십이 바뀌는 2017년에 김정은 정권은 핵실험을 두 차례 감행해 핵무기 소형화를 완전하게 이루려고 한다는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황장엽 비서의 20년 전 경고를 무시하고 북한에 막대한 현금과 식량을 퍼부은 결과는 우리 민족의 운명을 파괴하는 핵과 미사일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한국 사회는 북한 체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진영 논리에 빠져 정도(正道)를 포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이 뒤집힐 위험마저 보인다. 태 공사의 꿈이 황장엽 비서의 좌절된 염원처럼 비극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한민족의 운명과 미래를 위해 태 전 공사만 총대 메고 나가라고 등 떠밀 수는 없다. 이제 한국 사회가 태 공사의 진심 어린 목소리에 화답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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